고려의 전체적인 시기구분을 보면, 위 사진과 같다.
무신정변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뉘고,
또 전기 안에서 집권세력에 따라 다시 초기와 중기로 나뉜다.
그리고 후기에는 몽골의 침입,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1392년 조선이 건국된다.
집권세력의 순서는
호족 -> 문벌귀족 -> 무신 -> 권문세족 ->신진사대부
이 순서이다.
고려시대 초기 왕의 업적과 역사적 흐름이다.
태조 -민생안정 정책을 위해 세율을 1/10로 완화시켰다. -흑창을 두어 빈민을 구제 하였다. -호족에 대한 당근정책으로 정략결혼, 사성, 역분전을 두었고, 채찍정책으로는 사심관(연대책임), 기인, 정계, 계백료서, 훈요10조가 있었다. 북진정책으로는 서경을 중시했고, 청천~영흥만까지의 영토를 확장하였다. |
혜종과 정종 사이에 왕위쟁탈전 -> 왕규의 난 |
광종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를 시행하여 왕권을 강화시켰다. -호족을 숙청하고 공복을 제정하였다. -칭제건원 후 독자적 연호인 광덕, 준풍을 사용하였다. |
경종 -시정전시과를 시행했다. |
성종 -중앙관제를 2성 6부로 정비하고 국자감을 정비했다. -지방 12목에 지방관 목사를 파견했다. -향리제를 도입했다. -연등회를 축소하고 팔관회를 폐지하는 등 문벌사회의 토대를 마련했다. -당시 6두품 출신인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일부 받아들였다. |
고려의 중앙행정조직
중서 문하성 밑에 정책을 심의하는 재신(2품이상), 언론을 담당하는 낭사(3품 이하)가 있었다.
상서성 밑에 6부(이,병,호,형,예,공)이 있어 정책을 집행하였다.
이 체제들은 당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중추원에는 군국기무를 담당하는 추밀(2품 이상)과 왕의 비서인 승선(3품)이 있었다.
어사대는 관리를 감찰하는 기구였다.
삼사는 언론이 아닌 회계를 담당하는 기구였다.(조선시대 3사는 언론기능 담당)
이 체제들은 송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중추원의 추밀이 모여 재추회의를 담당하였다.
도병마사(도평의사사->도당)와 식목도감을 운영하였다.
이는 고려만의 자주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중방은 무신 회의 기구였다.
중서문하성의 낭사와 어사대가 모여 대간을 담당하여 언론(서경, 간쟁, 봉박)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는 조선의 3사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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