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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시험]-문벌귀족 사회와 무신정권

by 랑마일 2020. 6. 6.

문벌귀족 사회와 무신정권


 

호족의 발생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풍수지리를 따라 고구려 계승의식을 가지고 시작됐다.

 

그러나 문벌귀족이 지배층이 되었을 땐,

교종유교 그리고 신라 계승의식을 가지면서 변하였다.

 

또한 문벌귀족이 누리던 특권이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음서제도를 통해

선조중에 5품 이상 관리가 있었다면

과거제를 보지 않고도 벼슬에 오를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공음전을 통해 

문벌귀족의 재정을 확충하였다.

 

사회적으로는 폐쇄적인 통혼을 통해

권력이 분배되는 것을 막았다.

그로인해 심지어는 근친혼까지 있었다.

 

이러한 모순이 반복되자 들고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인종과 이자겸의 관계는 장인어른이자, 외할아버지였다.

이자겸은 이렇게 중첩된 왕실과 혼인으로 80여년간 정권을 유지했다.

 

그러다 이자겸의 권력독점에 반발하는 왕의 측근세력과 이자겸 세력과의 대립으로

이자겸의 난이 일어났다.

 

그러나 인종이 척준경을 이용하여 이자겸을 제거하고, 척준경이 탄핵으로 몰락하면서 마무리되었다.

 

 

다음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이다.

서경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묘청정지상, 개경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부식이 있었다.

 

서경파의 사상은 진취적이고 자주적이었으나, 개경파는 보수적이고 사대적이었다.

 

서경파는 불교 사상을 기반으로 풍수지리를 내세우며 북진정책을 주장하였고,

개경파는 유교 사상을 기반으로 사대정책을 내세웠다.

 

서경파는 고구려 계승의식을 표방하였고, 개경파는 신라 계승의식을 표방하였다.

 

서경파는 금 정벌칭제건원을 주장하였지만, 개경파는 금 사대를 주장하며 서경천도운동을 방해하였다.

 

결과적으로 김부식의 관군에 의해 진압되며 마무리되었다.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이 사건을 두고 신채호는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이라"라며
묘청이 이겼더라면 조선사가 진취적으로 진전하였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정중부(무신)의 수염을 태우는 일을 계기로 무신정변이 일어났다.

 

집권자에 따른 무신정변의 권력기구를 위의 표로 정리하였다.

 

우선,무신정변의 집권자의 잦은 교체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최충헌->최우)

 

정치적 권력기구인 중방은 이의방~이의민까지,

최충헌이 권력을 잡으면서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의 권력기구로 교정도감을 설치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최우가 독자적인 인사행정기구인 정방

국정 자문을 위한 문신들의 숙위기구로 서방을 설치했다.

 

군사적 권력기구인 도방은 경대승 때 설치하고 이의민 때 폐지하였으나, 최충헌이 다시 부활시켰다.

그리고 그의 아들 최우가 정권유지에 활용하기 위해 야별초를 설치했다(->삼별초)

 

그리고 무신 집권기의 사회적 동요의 모습으로는

대표적으로, 망이/망소이의 난(공주 명학소),

김사미의 난(운문)

만적의 난(개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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