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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Moment/나랑 같이 한국사 공부하자:-)

[한국사능력검정시험]-고려시대 대외관계(외교)

by 랑마일 2020. 6. 6.

고려시대 대외관계(외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집권층에 따른 침입의 흐름을 알고 가면 좋다.

 

호족이 지배하던 때에는 거란(요)이라는 나라가 10~11c에 침입했다.

이어 12c에 문벌귀족이 지배층이었던 때에는 여진(금)이 침입했다.

13c 무신 집권기에는 몽골(원)이 침입했고, 

권문세족이 집권하던 시기에는 원 간섭기를 거쳐

고려 말기에는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이 있었다.

 

10-11c 호족이 집권층이었을 때, 거란(요)이 침입했다.

 

1차 침입 때 서희장군이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2차 침입 때 강조의 변을 구실로 침입했을 땐 양규의 활약으로,

3차 침입때는 강감찬 장군이 귀주대첩에서 큰 승리를 얻으며 쫒아냈다.

 

이 일을 계기로 초조대장경이 간행되고, 나성을 개경에 축조하며,

거란과 여진의 침입을 대비해 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12c 문벌귀족이 집권할 때에는 여진(금)이 침입했다.

 

이 때 기병이 필요하다는 윤관의 건의에 따라 별무반을 편성하였다.

(별무반은 신기군(기병)+신보군(보병)+항마군(승병)으로 구성되어있다.)

 

윤관이 이끈 별무반이 여진을 천리장성 너머로 축출하면서 동북지방 일대에 9성을 축조했다.

 

후에 여진족이 강성하여 금나라를 건국하고 세력이 커지면서 고려에 금 사대를 요구했다.

당시 문벌귀족이었던 김부식과 이자겸이 이를 수용하고

묘청서경천도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13C 무신들이 집권할 때에는 몽골(원)이 침입했다.

이로 인해 거란 침입 때 간행했던 초조대장경과 황룡사지 9층 목탑이 소실되었다.

 

저고여 피살사건을 계기로 살리타 장군이 침입하게 된다.

그러면서 최우강화도로 천도하게 된다.

 

2차 침입 때, 김윤후와 부곡민들이 처인성 전투에서 살리타를 사살하게 된다.

 

3차 침입 때, 불교의 힘으로 승리하자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팔만대장경 조판을 시작하게 된다.

 

배중손이 이끌던 삼별초 야별초+신의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강화도-> 진도->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저항했다.

 

권문세족이 집권하던 원간섭기 때에는 다시 개경으로 천도한다.

서경엔 동녕부가 세워지고, 화주엔 쌍성총관부, 제주에는 탐라총관부가 설치되면서 영토가 축소되었다.

 

그리고 다루가치 파견하여 내정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정동해성(동쪽 나라=일본을 정복하자)을 설치하였고, 이문소라는 행성에 비리가 심했다.

그리고 응방을 설치하여 각종 특산물을 빼앗아갔다.

 

관제개편을 통해 2성 6부 체제가 1성 4사체제로, 중추원은 밀직사로 격하되었다.

 

권문세족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정치적으로는 도평의사사를 장악하여 권력을 독점하고

경제적으로는 대농장을 불법으로 확대하여 이익을 챙겼다.

 

사회적으로는 고려에는 몽골풍이 유행했고, 반대로 몽골에는 고려양이 유행했다.

또한 공녀를 강제로 선발하면서 조혼 풍습이 유행하게 되었다.

 

 원->명 교체시기 때 공민왕은 개혁정치를 하게 된다.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수복(충렬왕->동녕부, 탐라총관부 폐지),

이문소 폐지, 친원파였던 기철을 숙청하고, 정방을 폐지, 몽골풍을 금지시켰다.

또한 전민변정도감을 실시하여 왕권과 국가재정을 확충하였다.

 

14c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때는 신흥무이세력최영, 이성계, 최무선이 장악한다.

명이 철령위 설치를 요구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 정벌을 시행한다.

그러나 이성계4불가론(여름, 장마, 소국, 왜구)을 제기하며 위화도에서 회군한다.

이후 이성계는 우왕과 창왕을 왕위에서 내리고 공양왕을 왕위로 등극시킨다.

그리고 과전법을 시행하며 조금씩 권력을 장악한다.

그리고 1392년 조선을 건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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